며칠 전, 인천에 갈 일이 생겨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차가 몇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니 속이 뻥 뚫리더군요 :)
얼마 후 네비게이션에서 ‘분홍색 유도선을 따라가세요’ 라는 음성이 들리자 잠시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어둑한 길에 칠해진 2개의 선 중 저는 어느 쪽이 분홍색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잠시 주춤했지만, 네비게이션 차선과 표지판을 보고는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충남일보 Times
사실 이 주행유도선, 분기점 교통사고를 40% 이상 감소시킬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교통 흐름과 교통사고 예방 차원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죠.
하지만 저는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기 힘든 적녹색약을 가지고 있어, 분홍색과 녹색 유도선을 구분하는 데에는 비색각이상자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도 합니다. 특히 초행길이거나 어두운 밤인 경우에는 더 어려워서, 주행유도선보다는 전처럼 표지판에 의존하는 편이죠.
색칠공부
어른일 때의 경험과 비슷하게 아이였을 때 저는, 색연필을 구분하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 색연필은 거의 매일 사용할 정도로 필수 아이템이죠?
출처 : 지구화학
이 색연필. 모두가 한 번씩 사용해봤을 겁니다.
초등학생 시절 ‘태극기 그리기 수업’에서 색연필로 나름 야무지게 열심히 그렸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둔 제 태극기를 보신 선생님께서는 장난을 친 것이냐며 예상치 못한 화를 내셨습니다. 어머니께 가져가 말했더니 제가 색깔을 잘못 칠했다고 하시더군요.
출처 : 행정안전부
네, 빨간색인 줄 알았던 색은 갈색이었고, 파란색인 줄 알았던 색은 보라색이었죠😅 대략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나름 진지했을 국기 교육 시간에 색이 요상한 태극기라니.. 이제와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생각도 이해가 갑니다.
이 경험은 제게 색약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로 저는 항상 색깔의 이름이 적혀있는 색연필, 크레파스, 사인펜을 준비물로 챙겨갔답니다.
혹시나 내 아이가 색칠공부 중에 조금 다른 색을 사용한다면, 색각이상을 확인해보는 과정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빨리 알수록 아이에게 더욱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색’은 고속도로에서 가야할 길을 알려주기도, 한 국가의 상징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우리 일상에서 매우 당연하고 많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죠.
지하철은 어려워
출처 : 네이버지도
'지하철 노선도’는 대표적인 색 정보 매체입니다. 1호선은 파란색, 2호선은 초록색, 3호선은 주황색 등등… 색깔로 호선을 구분하고 있죠. 하지만 특별하게도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색상 차이를 구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색각이상자를 고려해 색으로만 구분해야 했던 지하철 노선도를 다시 디자인한 것이죠.
[해법1] 방향성 있는 곡선+직선
: 서로 다른 노선이 교차하는 곳에 방향성이 있는 곡선을 사용
[해법2] 색상 조정
: 명도와 채도를 바꿔 대비가 잘 되도록 조정
[해법3] 외곽선 삽입
[해법4] 환승역 정보 표기
: 환승역에 호선 숫자를 기입
출처 : 네이버지도
작지만 변화된 지하철 노선도는 색각이상자들이 노선을 확인하는 시간을 절반 가량 줄였을 뿐만 아니라 비색각이상자에게도 21%의 시간을 줄였습니다. 소수 사용자들의 불편을 개선했는데, 다수 사용자들까지 이득을 보는 효과를 누린 것이죠!
서로 다른 색
우리 생활 곳곳에 색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꽤나 많은 편입니다. 색깔은 간편하면서도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쓰임새가 다양하고 중요하죠. 하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 같은 색을 보고 있지 않답니다. 저마다 다른 색을 이해하고 있죠.
소수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 이건 소수만이 아닌 모두의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